2020년 5월 3일 일요일

New work 2020. A pershable skill.(녹슬 수 있는 기술)



     
                      A pershable skill/Mixed Media/Variable installation/2020



작가노트 1.

슬라보예 지젝이나 브르노 라튀르나 지금의 현상을 분석할 뿐동시대를 통제할
헤게모니를 제시하지 않는다.
  지점이 바로 노암 촘스키가 지젝을 비판하며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대안이 없는 인간이라고  비판을 제기된 부분 이기도 하다
사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이 둘은 매우 반이식론자 혹은 포스트 인식론자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심지어 브르노 라튀르는 자신은 책을 쓰는 사람이지
이론을 정립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 그 지점에 바로 포스트 휴머니즘 ( 포스트 인식론) 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 내가 아닌 타인은 지옥이라는 이분법적  인식론적 세계관
이후의 세계관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튀르의 시간 개념은 인식론자들의 선형  시간대 위에 존재하지 않는
나선형의  시간임으로 우리의 시간은 과거의 어느 것의 파편 위에 파절된
어느 부분의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는 충첩된  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체  현재의 일부가 되는 하이브리드적
시간이기도 한데, 이 혼재성은 현재에 하위 카테고리로 종속된 과거로 인해
미래와의 간극을 빠르게 앞당긴다.

그러함으로 과거와 혼재된 현재와 거리감을 상실한 미래의 하이브리드
적인 세계를  정지된 선형 시간 위의 양가적인 인식론적 헤게머니로
분석하고 통제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거기에는 그저 현상이 존재할 뿐이고 그 현상은 재빨리 다가온 미래
( 테크놀러지, 매체다양성) 에 의해 또 다시 하이브리드화 된다.

그럼으로  장기간 현재를 지배하며 정의 내릴 수
있는 헤게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저 지젝이나 라튀르 같은 지성들의 동시대적 해석이 존재할 뿐임으로..

개인적 작업의 흥미의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어쩌면  인식론을 숭배하건 숭배하지 않건 미학을 알고 있는
( 그러니까 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자격을 갖추거나
그것을 공부한 이들 혹은 예술가 전반이들에게는 단순히 '포스트 미디엄'이나
'포스트 매체주의' 혹은 유일적인 예술적
오브제가 아니라  비마감의 '포스트 매체적
예술적 오브제'라고도 비춰질 수도 있을 수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화학적전자적 기재의 혼재이건 혹은 파운드 오브젝들 간의
하이브리드건  매체간 충돌이건  뭐건 간에
.....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으로  보여지건 간에
휴머니즘적 사고관(인식론) 과 포스트 휴머니즘 사이의 어떤 과도기
적인 시간을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뭐 대단한 스펙타클한
시각적 충격이나 주술적 매력을 보여주진 못하더라손 치더라도
....

그래서  그것의 '정체성' 에 대한 의문 말하자면, 디자인인지 유일 오브제의
예술품인지 혹은 장난감인지 판매가 가능한 포스트 매체인지
따위 등등의 다양한  의문들 사이의 어느 선상 위에
존재할 수가 있고,   그런 의문들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것의 무용론적이고
불분명한 정체의 제시,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Something 혹은 a spot

그 어디쯤의 오늘로서....


작가노트2

개인적으로 작품 속에서 지속되어 왔던 관심은, 무기체임에도 불구하고
유기체의 특성을 보이는 무기물들의 생명체적 유사 속성이었다.
철가루(fe) 와 혼합되어 만들어진 진회색의 플러버(Flubberpva-
폴리바이닐 알콜-와 붕사 borax 혼합물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고무 폴리머)덩어리는 리퀴드에 가까운 제형으로서
물리적 동력을 가진 기계에  의해 작동된다.
플러버는 유기체와 같은 체취  (암모니아9%+ 박테리아 활성성분
개천의 진흙+ 마른 갈대 - 아스파라긴, 펜토산 성분+ 아세트산5%
) 를 가지며, 기침, 숨소리, 딸국질 등과 같이
기관이 일련의 신체의  비정상적 이상 징후를
보일 때 나타나는 파열음이 조합된 소리를
갖게 된다.